TANAKA의 역사

귀금속을 "다각적"인 시점으로 말한다. 다나까귀금속의 오랜 역사, 경험속에서 떠오른 귀금속의 의외의 사실이나 다나까귀금속과의 관계를 컬럼 형식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HISTORY of TANAKA HOLDINGS vol.6

금의 역사 제1차 골드 붐

1979년 초부터 해외와 일본 국내의 금 시세가 매월 상승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린 기세는 멈출 기운을 보이지 않아 1월의 해외평균 금 시세 1온스=227달러가 연말에는 460달러로 급등. 일본 국내 평균 금 가격도 1월의 1그램=1,500엔 미만이었던 것이 연말에는 3,600엔으로 뛰어 일본 최초의 골드 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제1차 골드 붐으로 금 가격이 피크에 달한것은 1980년 1월22일로 1그램=6,495엔까지 상승. 1월의 월평균 가격도 1그램=5,285엔으로 1년전(1,482엔)의 약 3.6배로 되었습니다. 그 후에 금 가격은 급락, 약 1년간의 금 급등극은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사이에 해외시세가 크게 변동할 때마다 매스컴에 보도되어 당사에는 연일 고객이 쇄도했습니다.

점포는 저렴하게 금을 구입하고 가격 상승에 의해서 매각하는 고객과 "금 가격은 아직 상승한다"고 보고 새롭게 구입하는 고객으로 붐벼 점포에서 몇 시간이나 기다리시는 분도 나오고, 마침내 고객끼리 금을 직접 매매하시는 사태까지 발생했습니다. 금을 매각하신 분은 아직 그렇지도 않으나, 구입하신 분 가운데에는 진품인지 어떤지 걱정이 되어 나중에 진위를 확인하러 방문하신 분도 계셨습니다.
당시 홍보실에는 금 가격에 관한 문의가 쇄도해 많은 날에는 1,800건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4대째 사장인 후카미 다다히코는 매스컴의 취재에 쫓기는 한편, 정보수집의 소중함으로부터 전화상담실에 매일 찾아가 일반인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으려고 했다고 합니다.

금의 역사 지금형 금화의 상륙 그 첫번째1

빈 금화 하모니

빈 금화 하모니

메이플 리프 금화

메이플 리프 금화

일본에서는 현재 오스트리아의 빈 금화 하모니, 캐나다의 메이플 리프 금화 등, 몇몇 투자용 "지금형 금화"가 판매되고 있습니다. 가격은 "기념 금화"와 달리 매일의 금 가격에 따라 변화합니다. 모두 "풍요로운 국가・재팬"의 구매력을 전망해 속속들이 발매되었습니다.

지금형 금화 가운데에 일본에 가장 먼저 등장한 것이 1980년 발매된 크루거란드 금화입니다. 디자인이 뛰어난 금화로 세계 최대의 금산출국 남아프리카의 인터골드사 극동 지배인이 발매 전년에 "일본에서 금화를 발매하고 싶다"라고 당사에 상담하러 온 것이 계기였습니다.
당시 크루거란드 금화는 세계 최대의 발행량을 자랑하고 있었지만, 판매처가 구미 중심이었기 때문에 인터골드사는 극동 지구의 판로를 확대하고 싶어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일본에서 판매한다고 해도 금 금지령이 풀린 다음 해이고, 물품 세율도 당시 15%(소매가격 25,000엔 이상)로 높아서 이 금화가 대중상품으로써 받아들여질지 미지수였습니다.

TANAKA의 역사 주얼리 부문으로 진출

당사의 귀금속 주얼리 부문 "다나까 귀금속 주얼리"는 1892년에 창업한 오래된 귀금속상입니다. 아사쿠사에서 "시미즈상점"이라는 이름으로 귀금속 장신구 도매를 시작하고, 그 후에 야마자키 가메키치 옹이 경영에 임해 "야마자키 상점"으로 회사명을 변경하고, 또 점포를 현재의 긴자로 이전했습니다.

가메키치 옹은 귀금속 업계의 영웅으로서 한 시대를 구축한 사람으로 귀금속의 신용과 제품의 품질 향상을 위해서 "K18"이나 "K24"와 같은 품위 보증을 명시하는 각종 규정을 일본에서 처음으로 입안했습니다.
또한, CITIZEN사즌의 전신인 "쇼코샤 시계연구소"를 설립해서 일본 국산 최초의 회중시계를 제조했습니다. 1928년, 이 시계를 쇼와 천황이 구입하셔서 육군 대연습시에 "야마자키에서는 일본 국산이지만 우수한 시계를 만들고 있다"라고 말씀하셨다는 에피소드도 있습니다.
그 후에 가메키치 옹은 귀족원의원에 선출되는 등 귀금속 업계의 거장이 되었지만, 정치에 사재를 쏟아부어 경영을 악화시키고 맙니다. 그리고 1930년 당사가 가메키치 옹의 뜻을 이어 경영을 잇게 되었습니다.